넬슨 기념탑 (Nelson's Column)
영업시간 _ -
휴무 _ -
입장료 _ -
연락처 _ -
주소 _ A400 Trafalgar Square, London, 영국
좌표 _ 51°30'28.0"N 0°07'40.5"W
홈페이지 _ -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넬슨 기념탑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짐.
넬슨은 나폴레옹을 이기면서 큰 명성을 얻었고, 유럽에서 명제독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인물임.
그 덕분에 영국 국민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이순신장군 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전쟁영웅임.
그래서 런던의 중심지인 트라팔가 광장에 높은 기념탑을 세워놨음.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동상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됨.
나포레옹의 군대를 물리친 군인은 몇 안되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넬슨 제독임.
그런데, 사실 프랑스의 주력군은 육군이었고, 해군력은 영국 해군에 비교할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제독으로써의 능력을 이 트라팔가 해전으로 온전히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음.
1758년 11남매중 6번째로 태어난 낼슨은 1770년 12살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했음.
함장이었던 외삼촌의 배에서 조타수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관후보생이 되었고, 1777년 부관이 되어 동인도에 베치되기도 했고,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함.
그 뒤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프랑스 혁명정부의 함대와 싸우는데 앞장섰고, 1794년 나폴레옹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을 점령했으나 오른쪽 눈을 잃는 부상을 당하기도 함.
1797년 존 저비스 제독아래서 스페인 해군을 상대로 세인트 빈센트 곶 해전을 참여했고, 큰 전공을 세움.
당시 영국 함대는 스페인 함대에 숫적으로 불리했는데, 저비스 제독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자신의 함선인 캡틴 함을 변침시켜 스페인 함대의 집결을 저지한 덕택에 영국함대의 대승을 가져올 수 있었음.
이 전투에서 넬슨은 스페인 함대의 전함 2척을 나포하는 전공까지 세움.
넬슨은 존 저비스 제독의 항명이었으나 큰 전공을 세웠기에 아무도 넬슨에게 항명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음.
저비스 제독의 보좌관이 항명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나 저비스 제독이 오히려 넬슨을 두둔했다고 함.
그 해 9월 넬슨은 영국 해군에서 9번째 서열인 청색 해군 소장 (Rear Admiral of the Blue) 자리에 올랐다고 함.
넬슨은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작전을 수행중에 적탄을 맞고 오른쪽 팔에 복합 골절상을 입었는데, 그 여파로 결국 오른쪽 팔을 절단해야 했음.
결국 두번의 부상으로 오른쪽 눈과 오른쪽 팔을 잃으면서 절망에 빠졌지만 5달만에 복귀했음.
넬슨은 이집트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을 섬멸하는 임무를 맡았고, 당시 프랑스 함대를 이끌던 프랑수아 브뤼예 제독의 함대를 거의 전멸시켜 버렸음. 13척중 10척은 항복을 했고, 2척은 도망, 1척은 좌초 되었음.
영국 함대의 사망자는 천명미만으로 알려졌는데, 프랑스 함대는 수천에서 최대 만명의 피해자가 나왔다고 함.
그로 인해서 영국 해군 서열 7위와 6위인 적색 해군 소장(Rear Admiral of the Red), 청색 중장(Vice Admiral of the Blue)을 차례로 임명 받음. 이후 코펜하게 해전의 승리로 자작에 서임되기도 했음.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영국 본토 침공을 계획했고, 병력을 모으면서 불로뉴 항에 상륙정들을 집합시킴.
영국 정부는 넬슨을 파견해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항구 봉쇄만 했음. 이때 해군 서열 5위인 백색 중장(Vice Admiral of the White)의 직위에 올랐음.
욕심을 낸 넬슨이 봉쇄망을 느슨하게 해 프랑스 함대를 유인하려고 했으나 작전 실패로 오히려 프랑스 함대가 항구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준꼴이 됨. 이 때문에 넬슨 제독은 책임지고 함대에서 물러나 본국으로 돌아감.
하지만, 이후 영국 함대는 프랑스 함대를 격파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높치자 결국 영국 해군은 다시 넬슨을 파견시켰음.
결국 여러 사건 후에 트라팔가 해전이 발생했고, 이곳에서 넬슨은 적의 총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고, 끝내 사망하게 됨.
적의 총탄은 넬슨의 허파를 관통하고 척추에 박혔다고 함.
세계 최고의 명제독에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에 이순신과 넬슨은 항상 거론되고 있으나 서로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서로 다른시기에 다른 조건으로 다른 활약을 펼쳤기 때문임.넬슨의 대형 해전은 3번 뿐이었고, 그나마도 1번은 사실상 패전한 것을 승전으로 교묘하게 덮은 것임.그에 비해 이순신은 23전 23승으로 전승을 거뒀음.
넬슨 제독은 영국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지원은 커녕 오히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음.넬슨 제독은 결국 승리로 이끌기는 했지만 항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든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시도를 했음. 물론, 당시 영국과 조선의 국가적 차이도 감안하기는 해야 함.
반면 이순신은 양반가 출신으로 늦게 무과에 합격했지만, 능력을 인정 받으며 빠른 승진을 할 수 있었음.또한 해군 전력에서도 일본은 숫적으로 앞선것처럼 보이지만 전력면에서는 조선이 훨씬 강한 해군 강국이었다는 평도 많음. 특히 조선의 주력선인 판옥선은 뛰어난 방호력 이상으로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음. 일본은 내전을 치뤘기 때문에 육상병력이 주력이었음.하지만, 넬슨은 부유한 집안이기는 했지만, 평민 출신으로 대승을 거둔 해전에서도 큰 보상을 받기는 힘들었음.
넬슨이 속해있었던 영국 해군이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과 일본의 차이만큼의 차이를 가졌는지는 평가들이 다름. 그만큼의 전력차가 없었다는 의견이 더 많음.
이렇게 다양한 면에서 유리한점도 불리한점도 있기 때문에 꼭 어떤 사람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듦.하지만, 전반적으로 동양권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서양권에서는 넬슨 제독의 명성이 높은 것이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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