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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런던] 골든 힌드 (The Golden Hinde) :: 영국 / 선박 / 세계일주 / 해적 / 탐험가 / 펠리칸

by Haechi J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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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힌드 (The Golden Hinde)

 

영업시간 _ 10:00~18:00 (4월~10월)

            _ 10:00~17:00 (11월~3월)

연락처 _ +44-020-7403-0123

주소 _ St Mary Overie's Dock, Cathedral St, London SE1 9DE 영국

좌표 _ 51°30'24.7"N 0°05'25.1"W 

입장료 _ 6 파운드

홈페이지 _ https://www.goldenhinde.co.uk/

 

The Golden Hinde - The Golden Hinde | The Golden Hinde | Explore Sir Francis Drake's world-famous ship

Fantastic Pirate Training experience Amazing staff, the 2 pirates leading the training really brought it to life and kept everyone engaged and entertained (ages 7 to 62!) From the pirate clothes, to cutlass fights, firing canons to sea shanties, everything

www.goldenhinde.co.uk

 


 

골든 힌드 (Golden Hind)는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세계 일주를 할 때 사용한 갤리온선 임.

 

이 배는 빅토리아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음. 빅토리아호는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배로 유명한 화물선이었음.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지휘하는 몰루카 (현재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 탐험대의 일부였다고 함. 1519년 8월 10일 5척의 배로 세비야에서 출발한 탐험대는 단 두척만이 목적지인 몰루카스에 도착했는데, 이후에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Juan Sebastian de Elcano)의 명령에 따라서 인도양을 건너서 귀국했다고 함.

이후 수리되어 상선으로 50년 정도 활동하다가 1570년 정도에 실종되었다고 함.

 

이런 빅토리아호와 유사한 배를 만든 이유는 실제 무장 화물 운반선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임.

원래 이름은 펠리컨(Pelican)이었는데 후원자인 크리스토퍼 해튼 (Christopher Hatton)의 영향으로 이름이 바뀌었음.

크리스토퍼 해튼의 가문 문장이 황금 사슴이었는데, 그것에서 따온것이라고 함.

 

1973년 드레이크의 고향인 데본에서 복원되어 보존중이고, 런던에는 복제품이 만들어져 전시중임.

드레이크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뒤, 노예 무역상으로 유명해진 사촌형 존 호킨스와 어릴때부터 같이 교육을 받았음.

성장후 노예무역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스페인의 공격을 받아서 배를 상실했고, 이후에 스페인령 카디즈의 도시들과 화물선을 습격하는 해적이 됨. 뛰어난 실력으로 스페인으로부터 잘 도망쳐 다녔고, 약탈한 많은 재물을 영국 왕실에 스스로 상납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충직한 신하로 대우 받음. 물론, 스페인에서는 당연히 제거 대상이었음.

 

이 과정에서 드레이크는 골든 힌드를 이용한 세계일주를 하게 됨.

1572년 남아메리카에서 채굴한 금, 은을 실은 티에라피르메 보물 선단을 약탈했고, 카르타헤나로 향했지만, 작은 배 몇척을 얻는 수준에서 물러났고, 산 베르나르도 섬의 다리엔 만에서 스페인 배를 얻게 됨. 스페인은 승무원이 모자라 큰 배 두척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그 곳에 있던 흑인 노예를 통해서 배를 얻고 총, 칼, 식량을 나눠줬다고 함. 그리고, 그 흑인 노예를 통해서 페루 은 광산에서 나온 은을 파나마에 모았다가 보물 수송선이 도착하면 선적하기 위해서 놈브레 데 디오스로 보낸다고 함. 그 소식에 1573년 1월 실제로 프랑스 함대와 손잡고 흑인 노예들이 말한 은을 약탈하는데 성공함. 당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있었는데, 프랑스와 분배하고도 너무 많은 양이라 일부는 밀림에 숨겨뒀다고 함. 그 양이 덩어리로 2만개가 넘었다고 함. 결국 드레이크는 엄청난 부와 영광을 가지고 잉글랜드로 돌아감.

 

이후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을 지나다가 폭풍을 만나서 동행한 배 4척을 잃고, 기함인 골든 힌드만 마젤란 해협을 지나 태평양에 나왔는데, 마젤란 해협을 건넌 두번째 기록이었음. 첫번째 기록은 당연히 마젤란이었음. 이 과정에서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혼 곶과 드레이크 해협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이 드레이크 해협의 이름 역시 드레이크에게서 따온 것임.

그 뒤, 칠레와 페루 연안으로 북상하면서 스페인의 식민지와 갤리온 선박을 공격해서 온갖 보물을 약탈한 뒤, 태평양을 건너 자바를 거쳐 인도양으로 향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선으로와서 조선 수군과 교전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실제로 선조실록에도 잉글랜드의 공격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드레이크 함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기가 엇비슷한 것 같음.

결국 인도양을 횡단하고, 희망봉을 돌아서 3년만에 영국 플리머스 항에 귀환함. 이 때 얻은 보물 대부분을 영국 왕실에 받친 것임.

 

이렇게 되자 스페인 함대와의 일전을 앞둔 영국 왕실은 드레이크를 불러들여서 기사작위를 내리고 영국 함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함.

당시 드레이크가 상납한 금액이 무려 30만 파운드 가량 된다고 하는데, 이 금액은 당시 잉글랜드 왕실의 1년 국고 수입보다 많은 액수였다고 함. 

실제로 스페인 함대에 피해를 주기도하고, 일부 물자를 약탈해오기도 했는데, 부지휘관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영국 해군의 다른 함선들과 함께 제대로 작전을 펼친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함대에서 이탈을 해서 낙오한 스페인 함선을 공격하는 등 해적으로 활동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고 함.

어떻게 보면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 것일 수도 있음.

 

가장 대표적인 전투가 칼레 해전인데, 사실 칼레 해전은 드레이크로 대표되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의 충돌만이 원인이 아니였음.

당연히 스페인은 드레이크의 강력한 처벌을 원했지만, 영국은 이를 무시했고, 헨리8세때 시작된 종교 갈등으로 잉글랜드가 가톨릭을 박해하자,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은 아일랜드 카톨릭교도들의 반란을 지원했고, 포르투갈 왕위를 둘러싼 전쟁에서 스페인의 펠리페2세의 경쟁자를 잉글랜드가 지원했고,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독립 세력도 영국이 지원했음.

 

아무튼 결과적으로 칼레 해전에서 드레이트와 그의 사촌인 존 호킨스가 지휘관으로 참여했고, 영국이 승리를 거두면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그 세력이 많이 줄어듬. 하지만, 스페인 함대는 엄청난 세력이었기 때문에 칼레 해전 이후에도 남아있던 함대에 의해서 해전이 계속 이어짐.

그러다가 결국 재정 문제가 부담이 된 양국이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이 관계가 상당기간 지속 됨.

 

이런 일련의 과정을 관통하는 드레이크는 영국에서 당연히 추앙받는 인물이 됐고, 그 흔적으로 골든 힌드가 역사적으로 세계 일주를 한 함선이라는 것과 그 골든 힌드의 주인이 드레이크라는 점 덕분에 런던의 템즈강에 복제품으로 복원되어 전시중임.

 

실제 배는 생각보다 큰 규모가 아닌데, 어떻게 이 배로 세계일주를 했나 싶을 정도임.

배에 올라서 갑판 뿐만 아니라 내부도 일부 볼 수 있는데, 중세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서양식 함선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음.

 

런던을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체류 날짜나 목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런던 패스를 사는 경우가 있음.

런던 패스에는 골든 힌드가 포함되어 있는데 무료로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런던을 여행하는 관광객 중에서 런던 패스를 구입한 사람이라면 주변의 사우스워크 대성당, 버러 마켓, 더 샤드 등을 둘러보면서 같이 가볼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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