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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크푸르트] 괴테 생가 (Frankfurter Goethe-Haus) :: 독일 / 박물관 / 유료

by Haechi J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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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생가 (Frankfurter Goethe-Haus )

 

영업시간 _ 10:00~18:00

연락처 _ +49-069-138800

입장료 _ 15유로

주소 _ Großer Hirschgraben 21, 60311 Frankfurt am Main

좌표 _ 50°06'40.8"N 8°40'39.4"E

홈페이지 _ http://www.goethehaus-frankfurt.de/

 

Startseite

 

frankfurter-goethe-haus.de

 


 

괴테 하우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곳으로 괴테가 태어나서 오랜세월 살았던 집으로 그 흔적을 잘 보존해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중임. 집안 자체가 여유가 있는 집이라 집 규모가 꽤 크기 때문에 박물관으로 활용하기 좋음.

괴테는 독일의 대표적인 문학가로 알려진 인물인 동시에 철학자이자 재상이었고, 도서관장이자 연극감독도 했음.

그의 아버지는 평민 출신이지만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교육까지 받아 왕실고문까지 올라간 인물로 엄청난 출세를 했고, 어머니 역시 평민이지만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의 시장의 딸이었음. 괴테가 태어난 곳도 프랑크프랑크였기 때문에 그의 집안은 권력과 재력을 모두 지닌 여유있는 집안이었음. 그 덕분에 괴테 역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런 흔적이 괴테하우스에 고스란히 남이 있음.

괴테는 그의 어머니가 18살에 낳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21살이나 많은 39살이었음. 6남매 중에서 여동생과 함꼐 성인으로 자랐지만, 여동생조차 27살에 죽어서 노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괴테가 유일했음. 괴테는 82세까지 살아서 장수를 했음.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글을 잘써서 풍족한 지원하에 원하는 교육을 부족함 없이 받게 해줬는데, 괴테 역시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다양한 언어의 교육은 물론, 문학에도 소질을 보였음.

오스트리아, 프랑스, 러시아로 대표되는 구 시대의 패권국들과 신흥 국으로 분류되는 프로이센의 대립으로 7년 전쟁이 발발했는데, 대외적으로는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뺐고 복수하기 위한 오스트리아의 명분이 있었지만, 속내는 신흥국으로 떠오른 강력한 프로이센을 꺾기 위한 오스트리아의 계획이었음. 이로 인해서 다양한 동맹국들과 식민지국가까지 동원된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이었음. 이 전쟁이 어린시절의 괴테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던 외할아버지와 프로이센을 지지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임.

최종적으로 프로이센이 프랑크푸르트를 차지하게 됐지만, 한 때 프랑스군이 프랑크푸르트로 진군 했던 적이 있는데, 다시 프랑스군의 점령군 사령관인 토랑 백작이 괴테하우스에 머문적이 있었음. 이 역시 큰 영향이 있었음.

괴테의 아버지는 당연히 프로이센을 지지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을 싫어했지만, 당시 10살 정도였던 괴테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해서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군 사령관을 극진히 대접하며 친하게 지냈고, 프랑스군 사령관은 화답으로 독일어를 잘하는 프랑스군 부하 장교에게 괴테의 프랑스어 교육을 지시했음. 또한, 토랑 백작이 미술과 연극 애호가였는데, 그 덕분에 괴테는 근거리에서 프랑스의 예술을 접할 기회가 생겼음. 이 인연은 나중에도 이어지는데, 괴테가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때 토랑 백작이 도움을 줬음.

프랑스군이 물러간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요제프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는데, 이 모습을 보면서 괴테는 귀족 사회에 대한 시각을 확장 시킬 수도 있었음. 그 후, 괴테는 이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게 되는데,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것이었음.

법을 공부했지만, 법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했던 괴테는 25살에 근대 서양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게 됨.

이 작품이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파우스트보다 인기가 좋아서 남은 60가까운 평생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작가로 더 알려졌음.

 

당시 출판업계에서 괴테는 그저 신인작가였기에 약간의 인세만 줬지만, 그의 인기는 대단했고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의 초청을 받아 공무원으로 채용됨. 3년후에 과거부터 꿈꾸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남. 이 당시 저작 활동을 위해 유급 휴가를 내고 몰래 여행을 떠난 것임. 공작은 기일 없는 유급휴가가 몇 달 안에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음. 당시 괴테는 30대 후반이었는데, 공작은 이런 괴테를 이해하면서 이탈리아 여행과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계속 후원을 했음.괴테하우스에는 이 당시 바티칸 성 바오로 성당의 쿠폴라에서 바라본 전경이 그려진 그림도 전시되어 있음.

 

괴테의 이러한 흔적들 특히, 어린 시절 그의 흔적들이 유난히 많이 남은 곳이 괴테하우스 임.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려볼 것을 권하는 곳이기도 함.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유로타워를 지나 뢰머 광장으로 향하는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거리상 유로타워와 뢰머광장 거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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