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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싱가포르] 굿 셰퍼드 성당 (Cathedral of the Good Shepherd) :: 선한목자 / 대성당 / 성당

by Haechi J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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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셰퍼드 성당 (Cathedral of the Good Shepherd)

 

연락처 _ +65-6337-2036

운영시간 _ 07:00 ~ 24:00

주소 _ A Queen St, 싱가포르 188533

좌표 _ 1°17'46.4"N 103°51'03.9"E

홈페이지 _ https://cathedral.catholic.sg/

 


 

싱가포르 19세기 수녀원이었던 차임스와 현재 싱가포르 매니지먼트 대학에 인접한 성당으로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임.

1847년에 건축된 가톨릭 성당으로 2차 세계대전 때 피난처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성당임.

 

특히, 한국인에게 잘 열리진 이 성당은 한국어로 미사를 드리기도 하기 때문임.

한국어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로랑 조제프 마리위스 앵베르 라는 신부 때문인데, 한국어명이 범세형인 이 사제는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가운데 한명임. 

애베르 신부는 1819년 12월 18일 사제 서품을 받고, 1820년 선교사로 중국에 향했으나, 중국 도착전에 영국령 말레이시아 페낭의 칼리지 제너럴에서 1821년 4월에서 1822년 1월까지 강의를 했고, 1821년 태국 시암의 대목구장이었던 에스프리 마리 조제프 플로랑 주교가 싱가포르로 가달라고 요청했음. 1821년 12월 11일부터 일주일간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현지 조사를 했고, 이때 싱가포르 최초로 천주교 미사를 올렸는데, 이 때문에 싱가포르 교회사 최초의 천주교 성직자가 되었음.

1822년 마카오를 향해 갔으나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하고 현재는 베트남인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통킹에 2년간 머무르게 됨.

그 후로 중국에 도착해 12년간 지내면서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위치는 쓰촨성으로 알려져 있음.

 

천주교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던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을 앞두고 갑자기 선종하자, 1836년 4월 26일 앵베르는 천주교 조선교구 2대 교구장과 카프사의 명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1837년 5월 14일 조선 교우들의 인도로 만주를 통해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잠입을 함.

그의 수행원들도 13일 후에 한양에 들어왔음. 이로써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가 됨.

이는 조선 대목구가 설정된지 6년만이고 조선 천주교 창설 53년만의 말임.

조선은 특이하게도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전래되었으나 외부 선교활동 없이도 자치 교회를 세우면서 스스로 성장해나간 아주 독특한 케이스 였음. 1836년 당시 천주교 신자는 약 6천명이었고, 1839년에는 약 9천명까지 늘어났음.

숨어서도 천주교의 전도 활동과 교세 확장을 위해서 노력하던 앵베르 주교는 김여상의 밀고를 당함. 이미 잘못된 정보인줄도 알면서도 위험한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서 자수를 했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1839년 9월 21일에 새남터에서 참수 당함.

이때 함께 참수 당한 사람들 중에 이미 조선에서 활동하던 두 프랑스 선교사가 있었는데, 밀고를 당한 후 자수하면서 이들에게 보낸 서한에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좋은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라는 말을 했고, 여기서 유래한 말이 굿 셰퍼드 성당의 이름으로 이어진 것임.

 

이런 이유로 한국과 싱가폴의 천주교에 모두 깊은 연관이 있고, 중요한 인물의 말을 중요한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성당에 붙였고, 현재는 이런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음. 앵베르의 유해는 몇 번의 이장을 거쳐 지금의 명동 대성당의 지하실로 이장되었으며, 일부 유해는 절두산 순교성지에도 모셔져 있음.

 

이런 역사를 알고 있다면 시내 구경을 하면서 한번쯤 들려볼만한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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