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Parc Güell) :: 스페인 / 가우디 / 건축 / 타일

by Haechi J 2024. 1. 26.
728x90
반응형

구엘 공원 (Parc Güell)

 

연락처 _ +34-934-09-18-31

입장료 _ 10유로

영업시간 _ 09:30-19:30

주소 _ Gràcia, 08024 Barcelona

표 _ 41°24'52.2"N 2°09'09.7"E

홈페이지 _ https://parkguell.barcelona

 

Web oficial Park Güell | Barcelona

Benvinguts al Park Güell

parkguell.barcelona

 

 


 

구엘 공원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관광지인 공원임.

공원이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84년 세계유산에 등록된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인데, 사실 그보다도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 중 하나인 것이 더 큰 이유임. 

 

특이하게도 공원에 초등학교와 공용공원이 함께 있음.

공용공원은 무료 입장이 가능해서 아무때나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구엘공원 특정해서 부르는 구역은 유로로 이용시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미리 예매를 해야만 함. 워낙 인기가 많아서 미리 예매를 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당일에 입장 자체가 불가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말은 며칠전이더라도 미리 예매 하지 않으면 티켓이 없는 경우도 있을 정도임.

 

구엘 정원은 안토니 가우디의 경제적인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했다고 함.

특히, 타일 모자이크나 인공석굴등은 가우디가 평소에 좋아하던 기법과 자연속 곡선의 미를 잘 보여주는 부분들임.

앞서 말한것처럼 처음에는 화려한 도시로 만들려고 했으나 자금이 부족해져서 미완성으로 남았는데, 1925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사들여 공원으로 바꾸게 되었고, 현재는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수입원 중 하나임.

 

가우디는 살바도르 달리, 호세 카레라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카를레스 푸욜, 펩 과르디올라 등과 함께 잘 알려진 카탈루냐의 유명인 들 중 한명임. 특히 건축적인 부분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그의 건축물들이 대부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정도로 그 파급효과는 대단함. 사후에도 이렇게 유명한 카탈루냐 출신 인물은 아마도 살바도르 달리와 안토니 가우디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음.

나중에 추가로 말하겠지만, 독립성이 강한 카탈루냐 출신인 안토니 가우디는 죽을때까지 카탈루냐어만 사용했다고 함.

 

어려서부터 허약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던 가우디는 5남매중 막내였는데, 바로 위에 1살차이나는 둘째형이 항상 보살펴줘서 각별한 사이였다고 함. 이러던 가우디가 건축의 길로 접어든 것은 한 친구에게 자신의 그림실력을 인정 받으면서부터라고 함.

바르셀로나 건축전문학교에 입한한 가우디가 25살에 건축사 자격을 딴 후에 시청 산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커리어가 쌓이면서 수입도 늘고 활발해지면서 건강해졌다고 함.

 

구엘공원과 카사 밀라 중간쯤에 카사 비센스라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가정집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을 건축하면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함. 4층 건물로 타일을 많이 사용한 아랍식 저택이었는데 최근까지 사유지라서 출입불가였지만, 바르셀로나 시에서 일부를 매입해서 2017년부터 박물관으로 운영중이라고 함.

아무튼, 이 이후에 카탈루냐의 명문가 코미야스 후작 집안의 별장을 건ㅊ축하면서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을 만나게 되는데, 구엘 백작은 가우디를 평생 후원하게 됨. 그 덕분에 구엘의 이름이 붙은 장소들이 생기는데, 구엘 저택과 구엘 공원이 가장 대표적인 장소임.

구엘 백작의 엄청난 후원 덕분에 가우디도 평생 건축을 할 수 있었음.

 

구엘 백작의 이러한 후원 덕분에 유명해진 가우디는 역시 실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언론에 자주 회자 되었고, 많은 수주가 들어왔다고 함. 그 덕분에 구엘 가문의 건축물 많이 아닌 다양한 건축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가우디를 더욱 유명하게 해줬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인데, 지금도 바르셀로나에서 수 많은 여행사들이나 개인이 진행하는 가우디 투어에 빠지지 않는 건축물들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직도 건설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인데, 건설 초기에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그 뒤로 아무도 아직 무허가 상태의 불법 건축물인것을 모르다가 최근에야 그 사실이 밝혀졌고, 이에 벌금을 부과하고 정식 건축물로 등록하는 행정절차를 진행하여 2019년 6월 7일 공사시작 137년만에 합법건축물이 됨. 다음에 사그라다 파밀라아를 포스팅하게 되면 다시 설명하겠지만, 사그라다 파밀라아 건축 당시 행정구역사 바르셀로나시가 아니라 산마르틴 시였고, 건축 허가 신청서를 신청했으나 승인이나 거부도 하지 않은채 미뤄짐.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음. 그러다가 어느새 공사는 그냥 시작이 되었고, 1897년 바르셀로나에 합병되면서 모든 권한이 바르셀로나 시청에 넘어갔으나 아무도 허가 없이 건축이 된 것을 몰랐음. 그러다가 2015년 아다 콜라우 시장이 취임하면서 바르셀로나 시의 행정을 대대적으로 점검하면서 누구에게도 허가받지 않은 건축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2016년에 공식 발표했음.

원칙적으로 무허가 건축물은 건축물의 철거후 원복해야하지만, 카탈루냐의 경우 6년간 아무도 이의제기 하지 않고 존재했을 때는 건축물의 존속을 인정해줌. 다만, 별개로 벌금은 물어야 하는데, 130여년 동안 누적된 벌금을 계산하고 합의한 결과 성당 건축위원회는 3600만 유로를 차후 10년간에 걸쳐 시청에 지급하기로 했음. 이는 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1년 입장료 및 헌금보다 적은 금액이라서 건축에 들어가는 예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함.

 

이미 유명한 가우디는 이런 건축물을 설계했고, 사후에도 이런 이슈들이 계속 생기면서 재차 재조명을 받고 거론되면서 그의 건축물들이 끊이없이 거론되고 있음. 더욱이 그의 죽음이 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1926년 6월 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카탈루냐 법원 인근의 대로를 건너다가 노면전차에 치여 큰 부상을 입었음. 전차 운전자는 가우디의 옷차림만 보고 노숙자라고 여겨 길가에 끌어다놓고 그냥 전차를 몰고 갔으며, 사고를 목격한 행인들이 가우디를 병원에 데려가고자 했으나 택시가 역시 그의 옷차림만보고 3번이나 승차거부를 했고, 경찰의 도움으로 4번째 택시를 타고 산 파우 병원에 도착했으나 이곳의 의사도 그의 옷차림을 보고 기본적인 치료만 했다고 함. 가우디와 친분이 있던 신부인 모센 길 파레스가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와 제대로 치료하라고 닥달했으나 가우디는 그 유명한 말을 남김. 물론, 진짜 그런말을 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평소 그의 성격상으로는 충분히 그런말을 했으리라고 여겨져 전해진다고 함.

그 말은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거지같은 행색의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걸 보여주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게 낫다]라며 치료를 거부했다고 함.

결국 3일 뒤인 6월 10일에 73세로 사망했는데, 이미 치료가 무의미 할 만큼 소생 가능성이 상당히 낮았다는 의견도 있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전차 운전사는 파직을 당하고 구속이 됐으며, 택시 기사3명도 불구속입건을 당하고, 산파우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음.

 

국장에 가까운 장례가 치러졌는데, 이미 그가 얼마나 유명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임. 결국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묘지에 안장이 되었음. 10년뒤 스페인 내전 발발당시 과격주의자들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묘지가 방화되었고, 얼마 뒤 경찰에 의해 무덤안에 공화파의 무기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파해쳐짐. 결국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군대가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후에야 무덤을 다시 봉인 할 수 있었음.

 

이렇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바르셀로나 곳곳에 그의 다양한 작품이 남아 있음.

구엘 공원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우디의 건출물을 볼 수 있는 가우디 투어를 참여하거나 직접 찾아다녀보는 것도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묘미 중 하나임.

 

구엘공원에서 주의할 점은 바르셀로나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소매치기임.

특히 이렇게 유명 관광지에는 소매치기가 정말 많은데, 지역 주민들이라기 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오거나 정처없이 떠도는 이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음. 특히,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름.

 

개인적 경험으로 구엘공원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구엘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함께 버스에 오른 이들이 버스 안에서 내 가방을 털려고 지퍼를 여는 순간을 나한테 그대로 목격당해서 싸움이 났었음. 흔히 알려진 수법을 사용했는데, 3명이 주위를 둘러싸고 한명이 카탈루냐어로 크게 떠들어 시선을 끌면 그 순간 가방을 털어가는 수법이었음.

양쪽에 키큰 남자 둘이서있었는데, 내 시선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남자는 카탈루냐어로 시선을 끌고,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몸통으로 사람이 많은 쪽에서 볼 수 있는 시선을 차단하고, 내 앞쪽에는 나를 마주보고 선 여자가 가방 지퍼를 열고 있었음. 내가 내 가방을 발견했을 당시 지퍼문이 열리다가만 상태고, 지갑이 아주 약간 옮겨져 있었음. 지퍼를 열면서 지갑을 꺼내려다가 내가 빨리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실패한 것임. 사실 이 때 지갑에는 카드가 있었지만 어플로 바로 차단할 수 있었고, 현금도 50유로 정도 밖에 없었음.

나머지 돈은 모두 다른 곳에 분산해서 보관중이었음. 그래서 사실상 큰 다격이 올 것도 없었지만, 그 자체에 화가 나 있었음.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려고 준비중인 상태였음. 소매치기들도 어쩔 수 없이 다음 정류장에 따라내렸는데, 나한테 걸린 여자는 그대로 나한테 끌려 내렸음. 옆에 카탈루냐어를 하던 남자가 따라오면서 또 카탈루냐어를 하길래 들고 있던 물병과 함께 큰소리로 위협하면서 욕을 하니까 자신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한 제스쳐만 취하며 거리를 둠.

나한테 끌려나온 여자는 벽으로 던지듯이 밀쳐버리고 한국말로 크게 쌍욕한마디하고 보내버림.

 

이렇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구엘공원을 비롯한 다양한 관광지에서 소지품을 최대한 신경써야 함.

유로 입장인 경우 내부에 소매치기가 있을 확률은 적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음. 앞서 말한것처럼 대부분이 이민자거나 외국에서 유입된 사람들인 경우이기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바르셀로나 시에 반감을 가져도 지역민들 자체에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음. 물론 이 역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내가 만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상당히 친절하고 여유 있었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80~90년대까지 한창 경제성장을 많이 할 때 여전히 못먹고 못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상대적인 부유층인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소매치기를 많이 했었음.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우리와 스페인에서도 잘 사는 지역인 바르셀로나의 현지 주민이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내 생각임. 경제적으로 훨씬 나아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소매치기를 잘 볼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임.

외국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고, 경제적으로 훨씬 좋지 않은 상태다보니까 며칠만 머물다가 떠나는 관광객을 주 타겟으로 이런 범죄를 저지를는 것임. 범인을 잡기도 힘들고 피해자가 장기간 추적을 하기도 힘든 조건이라 범인들에게는 딱 맞는 표적이기 때문임. 결국 최대한 조심해야 여행을 안전히 할 수 있을 것임.

 

이러한 일들 때문에 가급적이면 구엘공원을 방문하는 방법과 예매 시간을 확인하고 거리에서 서성거리는 시간 없이 바로 이동할 것을 추천함. 개인적으로 티켓 예매에 실패해서 유로 지역을 못들어갔기 때문에 다음 스페인 여행이 있으면 방문해볼 생각임.

이미 앞선 일들을 겪었고, 가는 방법과 지리도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다음에 여행갈 기회가 된다면, 바로 앞에 말한 것처럼 거리에서 주춤거리거나 둘러보는 일 없이 바로 입장할 생각임.

 

 

 

 

 

 

 

 

 

728x90
반응형